인생
김정한
매일 조금씩 떠납니다
아름다운 시간과도 이별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도 조금씩 이별을 합니다
때로는
미칠만큼 가슴 가득히 사랑의 꽃을 피운 적도 있었고
때로는
그리움에 온밤을 새하얗게 지새운 적도 있었지만
오늘은 다 비우고 떠나렵니다
이제,
오랜고뇌 저편에 상실의 우울증으로 있던
나를 버려두고 빈 몸으로 먼 길을 떠나렵니다
한 걸음 두 걸음 옮길 때마다
매달리며 쫓아오는 물결 같은 그리움이 나를 힘들게 하지만
살다보면
꺽이고 부딪치고 차이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생의 무대.
그 처연한 시간 위에서 각본대로 살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 까요
때로는 지독한 사랑이 나를 여러번 살렸고
때로는 지독한 외로움이 나를 수없이 죽였습니다
금새 찿아온 가을도 떠나는 소리가 들립니다
구름 가듯이 가을이 내 곁을 빗겨 지나갑니다
나도 이제.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 한아름 터지게 가슴에 안아보고
떠나는 오늘을 보내고 새로운 내일을 맞으렵니다
인생.
밀물처럼 찿아와서 창가에 미련한 자락남기고 서서히
멀어져 갑니다 .
흔들리고 또 흔들려서 더 강해지는 아름다운 갈대처럼
진심으로 인생을 사는나이
내가 알면서도 자주 잊고사는 내 존재와 삶의 유한성을 좀더 깊이 절감하며
내게 남은 시간의 잔고에
성숙한 통찰과 명상이 무르익어 이해하고 양보하며 체념할수 있는 너그러움을 익히리라
끝이라 말하면서 시작되는 아린사랑도
목 까지 자란 그리움 잘라낸 후 집착않고 보내리라
떠나는 시월 끝자락
세월의 모퉁이를 돌아온 차거운 바람이 죽비되어 가슴을 훝고 지나간다
10.30 백목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