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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혼자 분주하다

백목향1 2017. 12. 14. 05:48

  

     추억은 혼자 분주하다   / /  이기철

  

          저녁이 되면 먼 들이 가까워진다

          놀이 만지다 두고 간 산과 나무들을

          내가 대신 만지면

          추억이 종잇장 찟는 소리를 내며 달려온다


          겹겹 기운 마음들을 어둠 속에 내려 놓고

          풀잎으로 얽은 초옥에 혼자 잠들면

          발끝에 스미는  저녁의 체온이 따듯하다


          오랫동안 나는 보이는 것만 사랑했다

          이제는 보이지 않는 것도

          사랑해야 하리


          내 등뒤로 사라진 어제

          나 몰래 피었다 진 들꽃

          한 번도 이름 불러 보지 못한 사랑의 이름

          눈 속에 씀바귀

          겨울 들판에 남아있는 철새들의 영혼

          오래 만지다 둔 낫지 않는 병

          추억은 어제로의 망명이다


          생을 벗어버린 벌레들이

          고치 속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 생이 아려온다


         짓밟혀서도 다시 움을 밀어올리는 풀잎

         침묵의 들판 끝에서

         추억은 혼자 분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