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목향의 블로그 260

봄의 단상(斷想)

꽃이 핀다고 봄인가 눈이내린다고 겨울인가 얼음 속에서도 꽃은 피어나고 봄 한가운데서도 눈은 내린다 사랑한다고 다 행복한가 행복하지 않아도 감사한 사랑이 있고 상처를 품고도 즐거운 사랑이 있다 봄은 스스로 꽃피우는 자의 것이다 감당할 만큼의 무게만 짐 지워지는 몫 너무 힘들고 고통 스러울 때 지쳐 더이상 버틸 수 없을때 내게 주어진 몫이 이만큼 크구나 깨닫는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 했다 고난이 깊을수록 성취도 큰이치 살아가면서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알게 된다 아픔까지 감사하면서 크는 큰 나무가 된다 혼자 불행하고 혼자 다 짊어졌던 멍에가 보석으로 반짝이는 시간이 있다 그때가 언제인가 기다리지 않고 지금. 스스로 존귀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저 쉽게 피는 꽃은 없다 봄 들녘에 나가보면 찬란한 통증의 흔적 고통..

이별 노래 // 박 시교

봄에 하는 이별은 보다 현란할 일이다 그대 뒷 모습을 닮은 지는 꽃잎의 실루엣 사랑은 순간일 지라도 그 상처는 깊다 가슴에 피어나는 아지랑이 또 얼마나 세월이 흘러야 까마득히 지워질 것인가 눈물에 번져 보이는 수묵빛 네 그림자 가거라, 그래 가거라 너 떠나 보내는 슬픔 어디 봄산인들 알고 다 푸르겠느냐 봄에 하는 이별은 보다 현란할 일이다 하르르 하르르 무느져 내리는 꽃잎 처럼 그 무게 견딜 수 없는 고통 참 아름다워라

그거 안 먹으면

아침저녁 한 움큼씩 약을 먹는다 약 먹는걸 더러 잊는다고 했더니 의사 선생님은 벌컥 화를 내면서 그게 목숨 걸린 일이란다 꼬박꼬박 챙기며 깜빡 잊으며 약에 걸린 목숨이 할릴없이 늙는다 약 먹는일 말고도 꾸역꾸역 마지못해 하고 사는게 깜빡 잊고 사는게 어디 한두 가지랴 쭈글거리는 내 몸골이 안돼 보였던지 제자 하나가 날더러 제발 나이 좀 먹지 말라는데 그거 안 먹으면 깜빡 죽는다는 걸 녀석도 깜빡 잊었나보다 - 정 양-

3월의 바람 속에

어디선지 몰래 들어온 근심 걱정 때문애 겨우내 몸살이 심했습니다 흰 눈이 채 녹지 않은 내 마음의 산가슭에도 꽃 한 송이 피워 내려고 바람은 이토록 오래 부는 것입니까 3월의 바람 속에 보이지 않게 꽃을 피우는 당신이 계시기에 아직은 시린 햇빛으로 희망을 짜는 나의 오늘 당신을 만나는 길엔 늘상 바람이 많이 불었습니다 살아 있기에 바람이 좋고 바람이 좋아 살아있는 세상 혼자서 길을 가다 보면 보이지 않게 나를 흔드는 당신이 계시기에 나는 먼 데서도 잠들 수 없는 3월의 바람 어둠의 벼랑 끝에서도 노래로 일어서는 3월의 바람입니다 //이 해인

2월 // 오세영

"벌써"라는 말이 2월처럼 잘 어울리는 달은 아마 없을 것이다 새해 맞이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월..... 지나치지말고 오늘은 뜰의 매화가지를 살펴보아라 항상 비어있던 그자리에는 어느듯 벙글고 있는 꽃..... 세계는 부르는 이름 앞에서만 존재를 들어내 밝힌다 외출을 하려다 말고 돌아와 문득 털외투 벗은 2월은 현상이 결코 본질일 수 없음을 알려주는달 벌써라는 말이 2월만큼 잘 어울리는 달은 아마.....없을 것이다......

나이 // 이븐 하즘

사람들은 가끔 묻는다네 희끗 희끗한 귀밑머리와 이마에 팬 내주름살을 보고는 나이는 몇이나 되냐고 그럴땐 난 이렇게 대답하지 나의 나이는 한 시간이라고 여태가지 살아온 세월을 헤아리고 그 모던걸 다 합친다 해도말이야 아니. 뭐라고? 사람들이 깜짝 놀라면서 또 이렇게 되묻는다네 그런 셈법을 진짜 믿으라고? 그러면 나는 얘기하지 이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어느날 내 품에 안겨 은밀하게 입을 맞춘 순간 지나온 날들이 아무리 많아도 나는 그 짧은 시간만을 나이로 센다고 정말 그 황홀한 순간이 내 모든 삶이니까 -이븐 하즘- 박광수 엮음 (문득 그리운 날에는 시를 읽는다 2) 걷는나무수록

기약

어제는 스쳐간 얼굴들이 오늘은 내게로 다가오고 있다 이 세상의 슬픔도 끝없이 고독한 시간도 지금 내가 마음 밖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살아온 날들만큼 살아가야 할 날들에 새겨야 할 아직 많은 이름들이 있기 때문이다 더러는 허전하게 웃어도보고, 한낮에도 꿈을 꾸는 것은 내 인생 여정의 못이룬 인연들이 미지의 추억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깊은 밤 어느 창가의 불빛같이 내가 불면으로 하루를 채우는 것은 아직은 잊을 수 없는 내 젊은날의 흔적들과 내 마음 안에 머물고 있는 그리운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누구에게나 삶의 가치는 같겠지만 내가 홀로 절망과 희망을 나누어 갖는 것은 먼 후일로 남겨둔 하나의 기쁨과 약속이 있기 때문이다 -김경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