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5 13

안개꽃...복효근

꽃이라면 안개꽃이고 싶다 장미의 한 복판에 부서지는 햇빛이기보다는 그 아름다움을 거드는 안개이고 싶다 나로 하여 네가 아름다울 수 있다면 네 몸의 축복 뒤에서 나는 안개처럼 스러지는 다만 너의 배경이어도 좋다 마침내는 너로 하여 나조차 향기로울 수 있다면 어쩌다 한 끈으로 묶여 시드는 목숨을 그렇게 너에게 조금씩 빚지고 싶다

입...천양희

황닷거미는 입에다 제 알집을 물고 다닌다는데 시크리드 물고기는 입에다 제 새끼를 미소처럼 머금고 있다는데 나는 입으로 온갖 업을 저지르네 말이 망치가 되어 뒤통수를 칠 때 무심한 한마디 말이 입에서 튀어나올때 입은 얼마나 무서운 구멍인가 흰띠거품벌레는 입에다 울음을 삼킨다는데 황새는 입에 울대가 없어 울지도 못한다는데 나는 입으로 온갖 비명을 지르네 입이 철문이 되어 침묵할때 나도 모르는 것을 나도 모르게 고백할 때 입은 얼마나 끔찍한 소용돌이인가 때로 말이 화근이라는 걸 알려주는 입 입에다 말을 새끼처럼 머금고 싶네 말없이 말도 없이

이 세상 사는 날 동안...오광수

이세상 사는 날 동안 사랑하는 사람에겐 아픔이 없었으면 좋겠다 파도같이 밀려오는 아픈 육신의 고통과 심장을 도려내는 아픈 마음의 고통은 모두 없었으면 좋겠다 이 세상 사는 날 동안 사랑하는 사람에겐 이별이 없었으면 좋겠다 미치도록 보고 싶은 아픈 이별의 통증과 하늘이 무너지는 아픈 후회의 고통은 모두 없었으면 좋겠다 이 세상 사는 날 동안 사랑하는 사람에겐 행복한 날이었음 좋겠다 마주보며 같이 웃고 서로 도우며 보듬고 아끼고 정나누며 믿음 안에서 소망이 함께하였으면 좋겠다

꽃으로 잎으로...유안진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한 곳이며 뭐니뭐니 해도 사랑은 아름답다고 돌아온 꽃들 낯 붉히며 소근소근 잎새들도 까닥까닥 맞장구 치는 봄날 속눈섭 끄트머리 아지랑이 얼굴이며 귓바퀴에 들리는 듯 그리운 목소리며 아직도 아직도 사랑합니다. 꽃지면 잎이 돋듯 사랑진 그 자리에 우정을 키우며 이 세상 한 울타리 안에 이 하늘 한 지붕 밑에 먼 듯 가까운 듯 꽃으로 잎으로 우리는 결국 함께 살고 있습니다.

꽃씨를 닮은 마침표 처럼...이해인

내가 심은 꽃씨가 처음으로 꽃을 피우던 날의 그 고운 설레임으로 몇일을 앓고 난후 창문을 열고 푸른 하늘을 바라볼때의 그 눈부신 감동으로 비온 뒤의 햇빛 속에 나무들이 들려주는 그 깨끗한 목소리로 별것 아닌 일로 마음이 꽁꽁 얼어 붙었던 친구와의 오랜만에 화해한 후의 그 티없는 웃음으로 나는 항상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싶다 못견디게 힘들때에도 다시 기뻐하고 다시 시작하여 끝내는 꽃씨를 닮은 마침표 찍힌 한 통의 아름다운 편지로 매일을 살고 싶다

모녀

깊어가는 봄 속에 갑자가 들어앉은 여름 이제는 계절도 사람도 모두 초록 세상이다 열흘 남짓 비워둔 빈집 현관문을 들어서니 창문에 비치는 저녁 노을이 나를 반기고 오랜만에 다 만났던 가족들 모임에 빠르게도 지나갔던 오월의 나날들 미국 내슈빌에 사는 큰 여동생이 삼년전 남편을 코로나로 잃고 작년 여름에 잠간 다녀간뒤 올해는 넉넉한 마음으로 한국의 엄마를 보러 왔다 언제나 남편잃은 동생을 맞이하는 우리의 가슴은 파편을 맞은 것 처럼 아프지만 눈은 울고 입가엔 억지 웃음을 지으며 지금은 많이도 변해버린 고향의 부산에서 유년시절의 추억을 꺼내어 옛날로 돌아 간다 예전보다 많이도 줄어든 해운대 백사장의 파도를 바라보며 마시는 은은한 커피향에 추억을 마시고 세월을 마신다 이제는 서로가 함께 늙어가는 모녀들 하얀 머리..

나의이야기 2023.05.16

바다...조병화

사랑하는 사람아 그리운 사람아 멀리 있는 사람아 아주 멀리 있는 사람아 파도가 우는 걸 본 일이 있는가 파도가 흐느끼는 걸 본 일이 있는가 바다가 혼자서 혼자서 스스로의 가슴을 깎아 내리는 그 흐느끼는 울음 소리를 들은 일이 있는가 네게로 영 갈 수 없는 수 많은 세월을 절망으로 깨치며 깨치며 혼자서 혼자서 사그라져 내리는 그 바다의 울음 소리를 들은 일이 있는가 ( 당분간 블로그 쉼을 합니다 즐겁고 행복한 오월 보내세요.)

민들레...류시화

민들레 풀씨처럼 높지도 낮지도 않게 그렇게 세상의 강을 건널 수는 없을까 민들레가 나에게 가르쳐 주었네 슬프면 때로 슬피 울라고 그러면 민들레 풀씨처럼 가벼워 진다고 슬픔은 왜 저만치 떨어져서 바라보면 슬프지 않은 것일까 민들레 풀씨처럼 얼마만큼 의 거리를 갖고 그렇게 세상 위를 떠다닐 수는 없을까 민들레가 나에게 가르쳐 주었네 슬프면 때로 슬피 울라고 그러면 민들레 풀씨처럼 가벼워 진다고

작은 행복...용혜원

어느 누구의 가슴 앞에서라도 바람 같은 웃음을띄울 수 있는 향기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구의 가슴 앞에서라도 바람같은 웃음을 띄울 수 있다면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 아닐까 창문 너머로 불어 오는 바람이 왠지 기분 좋게 느껴진다 여기저기서 바쁜 하루를 시작하는 많은 소리들. 그 소리들에 화음을 주려면 오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 반갑게 잡아주는 정겨운 손 좋은 날을 기억해주는 작은 선물 몸이 아플 때 위로해주는 전화 한통 기도해 주는 사람의 마음 모두 작게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 작은 일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우리 마음에서 우러 나오는 작은 사랑을 나눈다면 행복과 사랑을 나누어주는 멋진 사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