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 19

봄길...정호승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ㅡ정호승 ㅡ

친구를 생각하며

금빛햇살 퍼지는 오후 지천에 핀 봄꽃들이 봄내음을 불러온다 팝콘처럼 터지는 벚꽃 면봉처럼 뭉쳐진 산수유가 활짝 피어나고 길섶에 핀 노오란 민들레의 미소가 예쁜 날 부산의 단짝친구가 새로운 작품을 발표 했다고 얼마전 출간한 시집을 소포로 보내왔다 시집이름 아직도 부산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는 여고시절의 단짝 친구 문득 고향이 그립고 친구가 그리운 날 오늘은 그녀가 보내온 시집 속에서 이란 시를 소개하며 포도주 처럼 오래된 우리들의 우정에도 세월속 인연꽃을 가슴에 피워 본다 부산문인협회 부회장이며 계간 계간의 운영위원 메마른 겨울 가지 몸속 붉은 피를 숨기고 모진 겨울 바람 맞고 있었네 목단 가지의 자존심은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아 키는 높게 뻗지 않아도 너나 얽힌 가지들은 숱한 이야기를 묵시로 ..

나의이야기 2023.03.30

석양의 연가...향린 박미리

소명을 다한 전사처럼 훨훨 무거운 넋 벗는 한 줄기 노을 그 장엄한 풍광에 눈시울 젖는다 사랑을 다해 사랑했어도 못다한 미련이 더 많아 가슴에 얹힌 마음 많았었는데 그래, 어차피 내맘 같지 않을 세상 꿈도 사랑도 가슴이 시키는 만큼만 취하다가 노을의 넋처럼 황홀히 쓰러져 누우면 그뿐 못다한 사랑 못다한 노래 되새기며 살아감이 인생이려니 훨훨 숨져간 저 석양처럼 오늘의 짐 후련히 내려두고 여명 속으로 배달될 내일만을 안고 가리라

내가 얼마나 더 외로워져야...유안진

내 청춘의 가지 끝에 나부끼는 그리움을 모아 태우면 어떤 냄새가 날까 바람이 할퀴고 간 사막처럼 침묵하는 내 가슴에 낡은 거문고 줄같은 그리움이 오늘도 이별의 옷자락에 얼룩지는데 애정의 그물로도 가둘 수 없었던 사람아 때없이 밀려오는 이별을 이렇듯 앞에 놓고 내가 얼마나 더 외로워져야 그대를 안을 수 있나 내가 얼마나 더 외로워져야 그대 사랑을 내 것이라 할 수 있나

개나리 핀 날에는...박고은

봄볕이 익어가는 쓸쓸한 날에는 개나리 핀 마을에 가보라 수없는 잔별의 눈부심 화안히 트이는 들녘, 샛노란 빛깔만 보아 마음이 풀리고 가슴이 녹아들어 평화가 고요히 흐르는 곳 훈훈한 정만이 물씬 풍기는 화사한 꿈더미 세상, 봄바람이 눅어져서 왠지 허전한 날에는 개나리가 흐드르지게 핀 마을로 가보아라 벌 나비 떼 지어 날고 행복의 풍선이 둥실 떠오른ㅡ

단추를 달듯...이해인

떨어진 단추를 제자리에 달고 있는 나의 손등 위에 베시시 웃고 있는 고운 햇살 오늘이라는 새 옷 위에 나는 어떤 모양의 단추를 달까 산다는 일은 끈임없이 새 옷을 갈아 입어도 떨어진 단추를 제자리에 달듯 평범한 일들의 연속이지 탄탄한 실을 바늘에 꿰어 하나의 단추를 달듯 제자리 찿으며 살아야 겠네 보는 이 없어도 함부로 살아 버릴 수 없는 나의 삶을 확인하며 단추를 다는 이 시간 그리 낯설던 행복이 가까이 웃고 있네

매화...나호열

천지에 꽃이 가득하다 젊어서 보이지 않던 꽃들이 이제야 폭죽처럼 눈에 보인다 향기가 짙어야 꽃이고 자태가 고와야 꽃이였던 그 시절이 지나고 꽃이 아니어도 꽃으로 보이는 이 조화는 바람 스치는 인연에도 눈물 고이는 세월이 흘러 갔음인가 피는 꽃만 꽃인줄 알았드니 지는 꽃도 꽃이었으니 두 손 공손히 받쳐들어 당신의 얼굴인 듯 혼자 마음 붉히는 천지에 꽃이 가득하다

그 창...양애경

그대 살았던 집 근처를 지나면 눈은 저절로 그 쪽으로 쏠려 귀도 쫑긋 그 쪽으로 쏠려 이 각도에선 그 집 지붕도 보이지 않지만 그 창도 물론 보이지 않지만 온몸이 그 쪽으로 쏠려 세포 하나하나가 속삭여 온몸의 솜털이 일어서 나부껴 이제 그대 거기 살지도 않는데 그런지 여러 해가 지났는데 길들여지 않는 눈은... 보고 싶은 것을 보게 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그립다고 날마다 말할 수 있었으면 안 그랬을까? 아침마다 밤마다 살 부비며 살았으면 안 그랬을까? 그리워라....이제는.... 다른 사람이 사는.... 그 창